보드게임 에버델 톺아보기

■ 디자이너 : James A. Wilson  일곱 명의 자식을 가진 아버지 . 에버델 외 알려진 작품은 없습니다. ■ 일러스트레이터 : Andrew Bosley  주로 보드게임과 비디오 게임 종사자로써 ...



■ 디자이너: James A. Wilson
 일곱 명의 자식을 가진 아버지. 에버델 외 알려진 작품은 없습니다.

■ 일러스트레이터: Andrew Bosley
 주로 보드게임과 비디오 게임 종사자로써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이기도 하지만 보드게임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참여작: Planecrafters(공동 디자이너로써), 테피스트리, 시타델, 러브레터, Mission: Red Planet 

■ 일러스트레이터: Dann May
 호주의 일러스트레이터.
 참여작: Archmage, Black Orchestra, Nothing Personal, Planetarium 

 2018년, 전 세계 보드게이머의 눈길을 사로잡았던 게임이 있었습니다.

 이 게임이 출시되자, 대부분의 보드게이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이 게임을 플레이했다는 인증샷을 매일 같이 자신의 SNS에 올리기 바빴습니다. 최근 소식은 이 게임의 플레이 사진으로 항상 도배되었죠.

 그 인기를 증명하듯이 1년 만에 크고 작은 확장들이 발매되었으며 지금도 그 행보는 현재 진행형입니다.

 이 게임은 무조건 사려고 했었고, 한국어판이 나오지 않더라도 영문판으로 구매하려고 마음 먹었던 게임입니다. 그 게임이 바로 에버델입니다.

 당연히 한국어판으로 출판되리라 믿었으며, 바야흐로 2019년, 드디어 한국어판으로 발매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게 웬걸? 당연히 ALG에서 발표될 거라고 믿었던 에버델이 전혀 낯선 이름의 신생회사 아브락사스(Abraxas)에서 발매됩니다.

 어디 듣도 보도 못한 신생회사가 감히 에버델 같은 대작을?

 이... 이거슨...


 하.

 지.

 만.


 (게임 가격을 저렇게 표시한 건 좀 에러라고 생각했지만)도대체 저 멋진 한국어 타이틀은 무엇? 진짜 제대로 된 신생회사가 탄생한 것인가?

 저는 딜라이트에서 보여줬던 그때 그 사건을 떠올리며 오타와 오역의 불안감도 잠시, 깔끔하고 아름다운 한국어판의 샘플 이미지에 큰 기대를 품었습니다.

 이 기대는 에버델을 수령했을 때도 유효했습니다.
 배송 포장 사건으로 슬슬 불만글이 올라왔을 때도 유효했습니다.

 그리고 곧, 심심찮은 정도의 오역이 발생했고 이때서야 기대는 꺾였지만, 그럴 수 있다고 느꼈습니다. 저도 실수와 잘못을 하니까요. 사람은 그럴 수 있습니다.

 게다가 카드 재생산이라는 놀라운 결단을 내렸고, 출력용 PDF까지 공개했을 때는 '이 회사, 상당한데?'라고 생각했죠.

 많은 시간이 지나 A/S 덱을 수령했을 때까지만 해도 제 감정은 평온했습니다.

 그리고 원래 있던 에버델 카드들의 슬리브를 벗기고 새로 도착한 A/S 덱으로 옮겨 씌울 때… 그 때…




 에버델은 마음의 고향 에버델을 떠나 각자 지도자가 되어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는 게임입니다. 유기적이고 효율적인 건물과 동물들을 내 도시에 배치하고, 누구보다 먼저 각종 이벤트를 여는 등 다른 도시보다 높은 점수를 가진 도시를 만들어 내면 됩니다.



 언제봐도 멋진 한국어 타이틀입니다.


 에버델에 쓰인 폰트들 중 메인 폰트 몇몇은 제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폰트임에도 불구하고, 에버델의 분위기와 잘 어울려서 그렇게까지 거부감이 들진 않는 것 같습니다.

 누가 알겠어요? 이렇게 한국어판 멋진 박스 안의 내용물은...(읍읍)



 보통 어느 정도 상자 크기가 큰 게임은 규칙서도 그만큼 크긴 하지만 내용 자체는 별 거 없이 큼직큼직한 글씨로 써있고는 합니다.

 그림 숲이 그랬고, 에버델도 마찬가지입니다.
 규칙 자체는 별 거 없는데, 규칙 외에 스토리텔링 등의 디테일이 재미있는 요소입니다.


 영원수 조립 방법이 뙇!


 뭐, 아마추어 보드게임 부산액션 타워가 있다면 에버델에서의 최고 기믹은 영원수 아니겠습니까?

 일반적인 조립방법을 따르지 않기 때문에, 영원수 조립 방법 설명서나 동영상을 보지 않으면 조립하기 까다로우니 괜히 객기 부리지 마시고, 동영상부터 보시기를 추천합니다.

 조립 방법 설명서 보고 조립해도 반대로 끼워넣거나 하는 일이 발생하니까요.

 조립 후 사진은 나중에 보기로 하고... 계속 이어서...



 생각보다 어마무시한 넓이를 자랑하는 게임판입니다.
 단순한 사각형의 보드가 아닌 원형과 곡선으로 처리되었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만들 수가 있을까요? 부러울 따름.


 에버델의 기본 트레이.

 아주 만족합니다. 슬리브를 씌우고도, 그리고 확장을 포함하고도 딱 들어갑니다. 역시 배우신 분!


 위부터 다람쥐, 거북이, 쥐, 고슴도치!(아닐 수도 있습니다)


 전 확장도 전부 구매했기 때문에, 루그워트의 추가 구성물도 있습니다.


 상단은 일반 이벤트 타일이고요.
 하단은 거주 토큰, 점수 토큰입니다.

 일반 이벤트는 누군가 선점하여 점수를 얻는 개념입니다.
 보통은 내 도시에 같은 종류의 카드를 3장, 또는 4장 내려놓아야 획득 조건이 달성됩니다.

 점수 토큰을 처음 보고는 '이거 뭥미?' 싶었지만, 에버델에서의 승점 아트워크와 통일시킨 디자인이라 뭐라 할 말은 없네요.


 게임에서 쓰이는 자원인 베리, 잔가지, 송진, 조약돌입니다.

 이렇게 자원 구성물의 소재 통일이 되어있지 않은 게임은 또 처음인 것 같습니다.
 굉장히 위화감이 느껴지지만 이런 접근도 나쁘진 않은 것 같습니다.



 어마무시한 볼륨을 자랑하는 동물 & 건물 카드입니다.
 심지어 여기에는 확장 카드까지 다 섞여있어서 더 그렇습니다.

 물론 확장은 카드 장수가 그렇게 많지 않기 때문에 기본판만으로도 이미 압도적입니다.
 쓸데없이 카드 장수가 많다는 느낌이 있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윙스팬과 비슷하게 느끼고 있네요.

 동물 & 건물 카드에는 크게 5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색깔로 구분하기도 하는데요, 초록색은 수확, 갈색은 여행자(아이콘만 보면 떠돌이 또는 거지 같지만)입니다.

 이 두 카드는 카드를 내려놓을 때 즉시 카드 하단의 효과가 발동됩니다.

 여행자 카드는 내려놓았을 때만 즉시 발동하고 끝나는 반면, 수확은 봄과 가을로 계절을 넘겼을 때 다시 또 발동되죠. 일종의 엔진 역할을 합니다.


 빨간색은 장소, 파란색은 관리입니다.

 대게 장소 카드는 자신의 도시에 새로운 행동 칸을 만들어주는 역할을 합니다. 즉, 일꾼을 배치해야 카드 하단의 효과가 발동됩니다.

 관리 카드는 패시브 개념입니다. 이것도 일종의 엔진이라고 할 수 있죠. 대게 초반에 깔아놓으면 두고 두고 유용하게 쓸 수 있습니다.


 보라색은 번영을 뜻합니다.
 점수와 관련이 되어있으며, 내려놓았을 당시에는 별 효과가 없지만 보드게이머라면 익숙한 표현 "게임 종료 시"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에버델의 리플레이성을 올려주는 요소 중 하나인 숲 카드입니다.
 숲 카드는 기본 행동 칸에 새로운 행동 칸이 추가된다는 개념으로, 기본 행동 칸에 비해 매우 효율적인 공간으로 설계되어 있습니다.

 오른쪽의 "쥐 아이콘 4"가 그려진 공간은 4명이 즐길 때만 활성화되는 공간이라는 뜻입니다.


 에버델의 리플레이성을 올려주는 두 번째 요소입니다. 바로 특별 이벤트 카드입니다.

 특별 이벤트 카드는 내 도시에 이벤트 카드 상단에 적혀있는 동물 또는 건물이 있다면 나의 일꾼을 배치하여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일반 이벤트와 유사하게, 누군가가 선점하는 개념이고, 점수와 연관되어 있지만, 기본적으로 장소 카드와 같은 역할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빨리 가져올 수 있다면 그만큼 고효율로 뻥튀기가 가능합니다.


 이벤트 카드와 숲 카드는 뒷장으로도 구분이 가능합니다.

 맨 왼쪽에 있는 카드는... 사실 쓸데 없는 카드.


 게임을 하려면 먼저, 영원수를 조립해야 합니다.



 사진을 잘 참고해주세요. 앞뒤가 바뀌면 아주 살짝 짜증납니다.


 큼직한 나뭇가지 판을 어린 아이 윗도리 입히듯 구멍에 잘 맞춰 쓱쓱 내리면 하단에서 딱 걸리게 됩니다.


 작은 위 나무가지가 약간 까다로운데, 그대로 위에서 내려오면 안 되고 일부러 한쪽부터 비스듬하게 끼운 후 공간을 이용해 반대방향으로 땡긴다음 내려야 합니다.

 글로 적으려니 어려운데, 아무튼 영원수 조립에서 가장 난이도가 있는 부분입니다.


 게임을 즐기는 인원 수에 따라 약간 세팅이 바뀌긴 하지만, 위 사진은 4명 게임 기준입니다.

 영원수 최상단에는 각 색깔 별로 일꾼 4마리.
 영원수 하단에는 이벤트 카드 4장.
 그리고 영원수 사이 공간에는 동물 & 건물 카드 더미를 놓습니다.

 게임판 하단의 뻥 뚫린 공간에는 게임 도중 버려진 카드를 놓는 곳입니다.

 게임판에는 각 공간 별로 어떤 자원을 놓아야할지, 그리고 일반 이벤트를 어떻게 놓아야할지, 숲 카드는 어디에 놓아야할지 잘 보면 보입니다. 의외로 디테일한 부분이에요. 숲 카드는 2명이 즐길 경우에는 3장만 배치합니다.



 일반 이벤트 같은 경우 게임판의 아트워크가 살짝살짝 겹치는 부분이 있어서 그 부분을 참고하여 위와 같이 배치할 수 있습니다.

 근데 그냥 막 배치해도 솔직히 상관은 없어요.



 이벤트 카드는 이렇게 양쪽에 2장씩.


 초원이라고 불리는 공간에는 이렇게 8장을 무작위로 공개합니다. 확장 카드가 한 장 껴있긴 하지만 그냥 넘어갑시다.
※카드를 뽑으라고 써있을 때는, 명확하게 '초원에서' 뽑으라고 설명하지 않는 이상, 영원수 아래에 놓은 더미에서 뽑으니 주의하세요.

 시작 플레이어는 뭐... 가장 겸손한 플레이어라고 하는데, 무조건 저네요(?).

 각 플레이어는 영원수에 세팅한 것 외 남은 자기 색깔의 일꾼 2마리를 가져옵니다.
 기본 자원은 없고요, 기본 손패로써 시작 플레이어는 5장, 두 번째 플레이어는 6장, 세 번째 플레이어는 7장, 네 번째 플레이어는 8장. 이렇게 차등으로 가져갑니다(게임 상에서 손패 제한은 8장입니다).

 그러면, 시작 플레이어부터 게임을 시작합니다.


 에버델은 정말 쉽고 간단한 게임입니다. 할 수 있는 행동이 세 가지 밖에 없거든요.
 심지어 그 중 한 가지 행동을 하면 즉시 다음 사람에게 넘어갑니다. 회전이 상당히 빨라요.

 1. 일꾼 배치
 2. 카드 놓기
 3. 다음 계절 준비하기

 일꾼 배치는 내 앞에 남아있는 일꾼을 행동 칸에 배치하는 것을 뜻합니다.
 행동 칸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이렇게 타원이 완벽하게 막혀있는 칸은 하나의 일꾼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일반 이벤트든 특별 이벤트든, 이벤트 행동을 하게 될 경우 가장 먼저 해당 칸에 들어간 사람만 할 수 있습니다. 아예 이벤트 카드, 또는 타일을 가지고 가서 자기 도시에 배치를 하지요.

 예를 들면, 저녁 불꽃놀이 같은 경우...


 내 도시에 이렇게 광부와 망루가 있어야...


 저녁 불꽃놀이 위에 일꾼을 놓고 해당 이벤트 카드를 내 도시로 가지고 올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타원의 하단이 뚫려있는 행동 칸에는 제한 없이 여러 일꾼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행동 칸에 들어가면 그 칸 옆에 그려진 자원, 카드, 또는 효과를 발동하면 됩니다.


 카드 놓기는 내 손패, 또는 초원에서 한 장을 골라 내 도시(내 앞)에 내려놓는 것을 말합니다.
 카드를 내려놓기 위해서는 카드 왼쪽의 자원을 지불하거나, 해당 동물에 맞는 건물이 이미 내 도시에 놓여져 있어야 하지요.
 내 도시에 카드는 총 15장까지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 확장을 포함시켰다거나 하여 특수한 능력을 가진 카드가 도시에 있다면 15장보다 더 많은 카드를 내려놓을 수 있지만요.

 이번 차례에...


 왕을 내려놓는다고 하면...


 이렇게 베리 6개를 공급처에 지불하거나, 이미 내 도시에 성이 있다면...



 이렇게 성 오른쪽 하단에 거주 토큰으로 그림을 막아 왕을 그냥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
(도시 연계로 내려놓을 수 있는 것은 건물 하나당 한 번뿐이라는 표시지요)

 지하 감옥을 내려놓는다고 하면...


 이렇게 송진 1개와 조약돌 2개가 필요하며, 해당 자원들을 공급처에 지불해야 합니다.
 처음 내려놓는 건물 같은 경우에는 대체로 자원을 지불해야만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

 확장이나, 특정 건물 카드의 능력으로 인하여, 동물 카드처럼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 또는 다른 대가를 치르고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만.. 이건 예외적인 경우니까요.
 수확이나 여행자 같은 경우는 그 즉시 카드 능력을 발동합니다. 그게 아니라면 즉시 발동하진 않아요.

 이미 도시에 관리 카드가 놓여져 있는 상태라면, 카드를 내려놓을 때는 항상 관리 카드의 능력을 먼저 체크하도록 합니다.


 배치할 일꾼도 없고, 카드를 내려놓을 수 있는 상황도 아니라면, 무조건 다음 계절 준비하기를 해야 합니다.

 다음 계절 준비하기를 한다면, 자신이 지금 몇 번째 다음 계절 준비하기인지 기억해두었다가 영원수에 써있는 혜택을 받으면 됩니다.

 첫 번째(봄)라면 일꾼 하나를 가져가고 자기 도시에 있는 수확 카드의 능력을 발동합니다.
 두 번째(여름)라면 일꾼 하나를 가져가고 초원에서 카드 2장을 골라 손패로 가져갑니다.
 세 번째(가을)이라면 일꾼 둘을 가져가고 자기 도시에 있는 수확 카드의 능력을 발동합니다.
 네 번째는 없습니다. 가을에 모든 일꾼을 배치하고, 도시에 카드도 내려놓을 수 없다면 패스를 선언하여 완전히 게임에서 이탈하게 됩니다. 패스를 선언하여 완전히 게임에서 이탈하게 된 플레이어는, 더 이상 다른 플레이어의 카드 효과 대상이 되지 않아요.

 모든 플레이어가 패스를 진행하여 아무도 행동할 수 있는 플레이어가 없다면 게임이 끝납니다.






1. 위화감을 묻어버린 조화로운 아트워크
 에버델은 상당히 특이한 인상을 주었던 게임입니다.

 영원수의 압도적인 존재감이 그랬고, 사각이 아닌 원형으로 가공된 게임판이 그랬습니다.

 서로 다른 재질로 구성된 자원 토큰도 통일감이 1도 없고요.

 그런데, 유려하고 귀여운 아트워크, 그리고 물 흐르듯 부드럽게 디자인된 게임판과 영원수의 조화가 그 위화감마저 잡아먹을 정도입니다.

 각 개별적인 요소는 전혀 조화로울 것 같지 않은데 하나로 뭉쳐놓으니 조화로운 풍경을 만들어 냅니다.

 최근에 즐겼던 테피스트리와는 전혀 다른 느낌의 압도적인 분위기가 있어요. 웅장한 느낌은 아니지만, 실제 동화속 작은 세계가 펼쳐진 기분입니다. 이건 대놓고 동화가 테마였던 그림 숲보다도 훨씬 강한 인상입니다.

 행동 칸에 대한 처리도, 막힌 타원과 열린 타원으로 행동 칸의 속성을 구분했다는 점이, 사실 그리 대단한 것 같아보이지 않을 수 있지만, 꽤 센스 있는 처리라고 생각합니다.

2. 비효율적인 것 같으면서도 효율적인 공간 활용
 에버델을 처음 즐기게 되었을 때의 느낌은, 예상은 했지만 그래도 생각보다 공간을 많이 차지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게임판을 굉장히 널직널직하게 쓰는 편이며, 잘 보면 비어있는 공간도 많은 편인데, 정작 게임을 하다보면 꽉 차있는 느낌입니다.

 이것은 1.과 같은 아트워크의 눈속임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영리하게 게임판의 디자인을 상당히 잘 해놓았습니다.

 제한된 공간에서 유기적인 UX/UI로 게임을 위한 게임에 의한 게임의 유로 게임과 달리 공간을 널직널직하게 쓰면 탁 트인 느낌과 함께 마음의 안정감을 주기도 하고, 시원시원한 느낌을 줍니다. 살짝 흐트러져도 워낙 널직하게 공간을 쓰니 복구도 빠르고요.

 개인적으로 공간을 많이 차지 하는 게임을 정말 싫어하는데, 게임을 하면 할수록, '에버델은 이렇게 크게 크게 해야지'라고 납득해버립니다. 오히려 옹기종기 아기자기하게 모여있었다면 에버델에 대한 인상도 많이 바뀌었을 것이에요.

3. 포지션 이상의 잘 짜여진 시스템
 에버델은 사실 가족 게임입니다. 뭔가 기대를 하면 안 되는 게임이에요.

 하지만 이왕이면 다홍치마. 일단 그 비쥬얼에서 괜히 기대하게 되고요.
 실제로 게임을 즐겨보아도 꽤 잘 만들어져 있습니다.

 일꾼 배치와 엔진 빌딩이 적절히 섞여있는데, 여타 엔진 빌딩이 그렇듯, 초반의 제한된 일꾼으로는 '뭐 할 수 있는 게 없네?'라고 느끼다가도 계절이 바뀌면서 일꾼도 늘어나고 도시에 배치한 카드도 늘어나면서 점점 자연스럽게 플레이 시간이 늘어나며 유기적인 콤보가 일어납니다.

 보통의 일꾼 배치와 엔진 빌딩이 합쳐진 게임은 후반부의 늘어지는 플레이 타임을 줄이기 위해, 후반에 갈수록 일꾼이 줄어들어 행동 수가 줄어드는 경우를 많이 봤습니다. 하지만 에버델은 이에 대한 역발상으로, 초반에는 아주 적은 행동을 제공하고 점점 더 많은 행동 수를 제공하면서 '아무 것도 없이 맨땅에서 시작한 내 도시가 이렇게 성장하는구나'하는 느낌을 아주 자연스럽게 어필하고 있습니다.

 쉽게 예를 들면, 윙스팬처럼 '이제 엔진 만들어서 막 돌리려고 할 때쯤 끝나버리네?'라는 하다만 느낌이 없습니다. 그런 찜찜함은 없고 약간의 아쉬움? 시원섭섭함이 남긴 하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했다라는 만족감이 있는 게임입니다.

 에버델은 단언컨데 적당한 난이도에 매우 잘 만들어진 일꾼 배치 & 엔진 빌딩 게임입니다.

4. 귀감이 되는 카드 레이아웃
 에버델에서 몹시 인상적인 점은 카드 레이아웃입니다.

 '이 카드 디자인하는 사람, 천재 아니야?'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공간 활용이나 배치 등을 아주 잘 해놓았어요. 점수도 눈에 확 보이고.

 카드 효과가 아이콘이 아니라 문장으로 되어있다는 점은 찬성파와 반대파로 갈리긴 하겠지만(전 반대파, 즉, 아이콘파), 명확화라는 측면에서는 아무래도 문장이 더 낫겠지요.

 건물을 지으면, 그 건물에 사는(건물을 담당하는) 동물을 그냥 내려놓을 수 있고, 이렇게 그냥 내려놓을 경우에는 거주 토큰으로 카드 오른쪽 하단 구멍을 막아서 표시하는 것도 어찌 생각하면 약간 번거로울 수 있지만, 귀여운 장치라고 생각합니다.

5. 테마가 살아있고 개연성이 있는 카드 능력
 제가 에버델이 좋은 게임이라고 평가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카드 능력에 개연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공동 묘지는 장소 카드인데 이곳에 일꾼을 배치하면 이제 영영 그곳에 일꾼이 남아있게 됩니다. 사실상 묻어버린 거죠. 지하감옥은 내 도시의 동물을 파기하고 지하감옥 밑에 깔아놓음(가둬놓음)으로써 다른 혜택을 얻습니다. 크레인을 지어놓으면 차후에 다른 건물을 지을 때, 크레인을 파기함으로써 혜택을 얻을 수 있고요. 아내와 남편은 같은 공간을 쓰기 때문에 2장이 한 도시에 놓이면 2장으로 치는 것이 아닌 1장으로 칩니다.

 이외에도 카드의 능력을 살펴보면 카드의 이름과 매칭이 아주 잘되어 있어요.

 테마가 느껴지지 않는 유로 게임의 카드 능력들이나, 지금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임들을 꼽아보자면, 사이언시아, It's a Wonderful World에서의 카드 능력처럼 '이 카드가 왜 이런 능력을 가지고 있는 거지?'하는 의문은, 거의 들지 않습니다.


1. 결국 카드 운빨 게임
 카드가 너무 많습니다.

 내 첫 손패가 어떻게 들어오느냐에 따라, 그리고 이후 손패 보충이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사실상 카드 운빨에 게임의 승패가 결정되는 게임입니다.

 4명이 즐기더라도 카드 운빨에 따라 게임이 다 끝나가는 동안 카드 더미를 다 쓰는 일 없이 끝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고...

 너무 많은 카드 풀 때문에 내가 원하는 카드가 나올 확률도 지극히 낮습니다.

 그래서 에버델에 대해서는 전략성을 높이 줄 수는 없습니다.
 이 운빨의 불합리를 느낀다면 에버델에 대한 재미가 확 줄어듭니다.

 최악의 손패에서 어떻게든 최적의 루트를 짜는 것에 집중한다면 나쁘지 않은 게임이지만, 게이머의 목표가 승리라면...

2. 서로 다른 계절에 접어들지만, 차례 순서에는 변동이 없는 것에서 오는 혼란
 사실 이건 제가 아쉬워할 것은 없는데요.

 많은 분들이 에버델을 할 때, '계속 차례대로 행동을 진행하는 것은 맞지만, 서로의 계절은 다를 수 있다'라는 설명을 들으신다면 당연히 이해하기 힘드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도 많이 헷갈려들 하셨고요. 저는 이 설명에 대해서, 틀리진 않았는데 참 개떡같은 설명이라고 느낍니다.

 산타 마리아도 누군가 할 수 있는 행동이 없어서 휴식을 선언하게 되면, 그 라운드 동안에는 다른 플레이어가 끝나길 기다리거든요.
 하지만 에버델은 그런 거 없이 계속 행동을 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에버델의 라운드 개념은 테피스트리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남이 몇 시대에 접어들었든 말든, 플레이어는 자기 할 일만 하면 됩니다. 그래서 누군가는 아직 할 수 있는 행동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행동을 다 끝내서 손가락만 빨게 되는 그런 게임입니다.

 차라리 계절에 대해서 설명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원활하게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3. 아브락사스
 에버델에서 단연코 가장 아쉬운 점은, 국내 유통 및 출판사가 아브락사스라는 점입니다.
 ...이견이 있을까요?

 저는 이 회사의 대응 방식에 대해서 이해할 수 없습니다.

 카드 재생산을 결정했을 때는 조금 다른 의미로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이때의 이해할 수 없음은 긍정적인 의미였어요.
 오류가 난 카드에 대해 재생산을 하게 되면 필연적으로 뒷면 불일치 현상이 발생합니다. 카드 뒷면의 색이 일치해서 앞 내용이 무엇인지 몰라야 하는 카드 게임의 인쇄 오류가 났을 때의 베스트 대처는 스티커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스티커를 덕지덕치 붙여야 하는 것을 못마땅해 하시는 분들도 적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저는 그래도 스티커가 베스트라고 생각합니다.
 비용도 비용이니 걱정도 되었고요. 물론 경우에 따라서는 스티커 제작이 더 많은 비용이 드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나중에 카드 전량 재생산이라는 걸 알게 되었을 때는 더더욱 경악했죠. '쩐다'고 느꼈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는 아시다시피...

 그리고 '카드가 잘못 인쇄된 것은 인쇄소의 잘못이다.', '우리는 제대로 된 파일을 보냈다.' 라는 식의 공지는... 그때의 그날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이제는 꽤 많은 분들이 보드게임이 어떤 식으로 제작되고 어떤 과정을 거쳐 생산이 되는지 아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를 비롯해서) 여러 신생 업체들이 생기면서 바야흐로 보드게임 한국어화 춘추 전국 시대의 서막이 올라간 상황이고요.

 보드게임이 좋아서, 보드게임 동호회 모임으로 시작된 업체들도 심심치 않게 있을 것이고, 필연적으로 이런 방식으로 신생 업체가 탄생하게 된다면, 업계의 생태에 대해 직접적인 업체 관계자가 아닌 일반 보드게임 유저에게도 어느 정도 정보가 공유되거나 유출되기도 하는데...

 이렇게 많은 정보가 노출된 상황에서는, 업체 입장에서 정말 대응에 대해 평소보다 더 엄격하고 엄중한 자세로 조심스럽게 한 자 한 자 써내려가야 한다고 봅니다. 물론 저도 항상 모든 상황에 대해 적절한 대처나 대응을 하는 것은 아니고 또 제가 그리 잘하는 것 또한 없습니다만.

 억울한 것이 있더라도 억울하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 업체와 개인의 차이가 아닐까요.

 인쇄 오류와 오역과는 약간 다른 문제지만 저 역시도, 이번 "우리들의 여름방학" 같은 경우, 많은 분들이 갖고 계신 첫인상보다, 의외로 매우 많은 것을 설명해야하는 게임이고 심심치 않게 잔룰이 있는 편이라 단순히 원문을 번역하는 것이 아니라 더욱 풀어서 규칙서를 작성했어야 했는데, 결과적으로는 너무 제 기준으로만 번역을 한 나머지, 다른 분들께서 읽으시기에는 의미가 명확하게 전달되지 않고 혼동을 드리게 되어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물론 이외에 다른 게임에서도 큰 실수를 한 적도 있고요.

 어쨌든 잘못된 결과물이 나왔을 때는, 책임자인 '나', 혹은 실무자인 '나'의 반성이 먼저가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완벽하게 잘못의 원인이 '나'에게 없다면 그 원인에 대해서 설명하고 공지하고 싶어하는 것은 당연하지요. 하지만 '나'에게 잘못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 원인을 찾아서 공지하는 게 의미가 있을까요. 결국 조금의 잘못이라도 '나'도 곧 원인이기 때문에 '내'가 반성하고 뉘우치면 되는 것을... 다음에 잘하면 되잖아요.

 그런데... 그렇게 파격적인 결정까지 해놓고 똑같은 실수를 또 반복하면 어떡합니까...(이 문장은 안타까워서 그렇습니다. 안타까워서)



그림 숲 - 물론 게임성은 많이 다르긴 하지만, 느낌이 유사합니다.
윙스팬 - 이 두 게임 역시 많이 다르지만 어딘가 모르게 유사한 느낌이 있습니다.


 에버델을 톺아보기 위해서 세팅을 하고 사진을 찍던 중, 평소에는 저와 보드게임을 거의(아예) 해주질 않는 여동생이 관심을 갖기에 톺아보기를 준비하던 당일 2인플을 즐겼습니다. 보드게임이라면 안 한다는 말을 먼저 했던 그 여동생이요.

 에버델은 바로 이런 힘을 가지고 있는 게임입니다.
 심지어 규칙도 어렵지 않아서, 동생도 쉽게 쉽게 잘 따라왔어요. 생각보다 너무 잘 따라와서 봐주려고 하다가 이기려고 필살기를 써버리긴 했지만(?).

 그리고 쉬운 규칙 속에서도, 엔진 빌딩 요소가 잘 살아있고, 카드 운빨이 크긴 하지만, 손패 회전을 유리하게 돌릴 수 있는 카드 등이 들어온다면 어느 정도 계획과 전략을 세우고, 잘 만들어진 엔진을 돌리면서 유기적으로 팡팡 터지는 엔진 빌딩의 재미도 어느 정도 느낄 수 있습니다(근데 솔직히 초기 손패가 꽝이면 노잼입니다... 엔진은 개뿔... 진짜 이 카드 운빨을 극복하기가 힘들어요...).

 괜히 서양의 보드게이머들이 에버델에 많은 사랑을 주고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에버델 한국어판은 요즘처럼 범람하는 대한국어화시대에, 그리고 심심치않게 신생업체들이 등장하는 때에, 여러가지 많은 의미... 어찌보면 부작용이랄지, 현 상황에 있어서 시사하고 있는 바가 매우 큰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소장할 가치가 충분한 게임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어판을 구매하시라고 선뜻 권하기도 민망한... 에버델 확장에 대한 한국어판 발매의 기대도 사라져버린(나와도 안 살...), 한때는 제가 정말 사랑했던 에버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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