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군 표류기 제 3화, 눈 떠 보니 정렴섬 세계의 정령이었던 건

사진 출처: 보드엠 이것은 꽤 오래된 기억이다. 보드게임 모임을 정리하고 칩거에 들어간 지도 꽤 오래되었으니 그 만큼 이 기억도 오래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많이 희미해진 기억이지만, 그 날의 기억을 최대한 되살려 서술해 ...

사진 출처: 보드엠
이것은 꽤 오래된 기억이다. 보드게임 모임을 정리하고 칩거에 들어간 지도 꽤 오래되었으니 그 만큼 이 기억도 오래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많이 희미해진 기억이지만, 그 날의 기억을 최대한 되살려 서술해 보기로 한다.

언제나 표류기는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발생하긴 했지만, 이 세계는 정말 예고없이 빨려들어간 세계였다.

나는 독고다이, 협력에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다.
독고다이, 이거슨 특공대의 일본어 발음이 아니다! 홀로 독[獨], 외로울 고[孤]. 홀로 외로운 상태에서 다이다이를 뜬다는 뜻!...아니 어차피 다이다이가 일본어 발음이니까 잊어버리기로 하자.

아무튼 여차저차 멍때리고 있었는데 어...? 어...? 하면서 시작된 정령섬의 세계.
눈 떠 보니 어느 새 나는 민물 비린내가 나는 햇살 아래 넘치는 강물이 되어있었다.
이거 아나? 바닷물 비린내보다 민물 비린내가 더 지독하다.
민물고기 비린내가 심한 것과 같은 이치.

사진 출처: 보드게임 긱

비위가 강한 편에 속하는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게 비린내인데, 내 몸에서 그런 냄새가 나다니... 이건 꿈일 거야...

당시 나를 포함해 총 넷의 정령이 있었는데, 바다, 그리고 다른 정령에게 파워를 부여해주는 서포트 역할의 정령... 그리고 하나는 모르겠다. 그만큼 정말 무작위로 모습이 바뀌었다는 뜻.

내가 나를 모르는데, 낸들 너를 알겠느냐마는 어쨌든 그렇게 시작된 것이다.

'이게 도대체 뭐야' 하는데, 하나 둘 슬금 슬금 희끄무리한 인간들이 해변으로 기어들어와 섬을 점령하더라. 무슨 노르망디 상륙 작전도, 인천 상륙 작전도 아니고.
아니 노르망디 상륙 작전에서는 채소 해변에 따발총이라도 설치되어서 하나둘 기어들어오는 병사들을 향해 발포라도 했지, 이건 뭐 그냥 속수무책으로 해변을 내주게 되더라.

그리고 조금 지나니 집을 짓더라?
그리고 또 조금 지나니까 섬 여기 저기에 똥오줌을 싸놓더라. 도시라믄서 하수 처리 시설 안 짓냐?

분노한 정령들은 인간의 분뇨냄새를 참지 못하고 전면 승부를 선택했지만, 아니 이거 뭐...
뒤늦게 힘을 모으기 시작했더니 쓸 수 있는 능력도 없고, 애초에 거의 무작위로 모습이 결정되다 보니 우리 정령끼리의 궁합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도 모르겠더라.

오합지졸의 정령들은 일단 한 여름밤에 모기 소리나는 방향을 향해 허무하게 손뼉이나 짝짝 치는 것처럼... 아니 뭐 모르는데 어떻게 합니까?(왜 화냄?) 일단 눈에 보이면 내리쳐서 죽이는 것을 선택하기로 했다.

이 세계에 적응도 못 했는데, 바퀴벌레 같은 인간놈들은 인정사정없이 쭉쭉 밀고 오더라.
이 친구들은 무슨 피임기구도 없는 건지, 대책 없이 수를 불려나간다. 정령섬 탈환이고 뭐고 중국이 빨리 건국되어서 국가와 사회가 나서서 이 인간 놈들의 정관을 법으로 묶어주길 진심으로 바랐다(?).

미개한 인간놈들. 하지만 그런 미개한 인간놈들보다 더 미개한 건 우리 정령들이었다.
않이... 도대체 뭘 하려고 해도 뭘 해야 되는 건지 알아야 대응을 하는데, 초반 헛짓거리들이 안나가 만든 작은 눈사람이 되어 데굴데굴 구르더니 올라프를 거쳐 어느 순간...


뭐야, 안 통하잖아?! 마치 고스트 버스터즈의 파괴신 고져의 마스코트 환생 모습처럼 커져버린 것이다. 아니면 미쉐린 인형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아무튼 정령섬은 더렵혀졌다.
대자연은 결국 인간에 굴복하였고, 더러운 인간놈들은 지들 스스로 포화되어 자멸하기를 바라는 수 밖에.

훈훈한 결말(?)을 맞이하고 도중에 원래 세계로 돌아와버렸다.
정령섬 세계에서는 겨우 중반이나 되었나 싶은데, 실제 현실은 두어 시간이 지났으려나...

아니 무슨 인간 등장! 인간 모이면 집을 지음! 집이 모이면 도시됨! 도시되면 정령섬 오염! 끊이지 않고 계속 몰려온다.

이것이 중국의 인해전술이라는 것입니까?
중국과 대결한 우리 조상님들이 느꼈을 공포가 이런 것입니까?

소국은 결국 대국의 속국이 되어 머리를 조아려야 한다는 것이 이 세계의 진리, 양.육.강.식.

자고로 협력 게임은 스토리가 있어야 하는데, 이건 스토리가 없다.

'님, 저기 인간들 나와떠염 뿌우 빨리 잡아야할 것 같아여'
'넹, 잡아볼께여'
'아, 근데 한 두 마리 남아버렸는데...'
'괜찮아요 어쩔 수 없으니까'

하지만 이렇게 한 두 마리 남아버린 인간놈들은 나비 효과가 되어 이미 미래를 결정해 버린 것이었다.
이런 안일한 생각으로는 인간을 몰아낼 수가 없어! 이 놈들의 생식력은 상상을 초월한다고!! 24시간 그것 밖에 하지 않나봐!

아, 좀 뭔가 몰입할 수 있는 스토리 텔링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는데, '여기 인간 나타났다!' 우르르 '저기 인간 나타났다!' 우르르… 이 과정에서 조금씩 처리하지 못한 인간놈들이 티끌 모아 태산이 되더니(명수옹, 티끌 모아 티끌이라면서요? 저한테 거짓말하신 거에요?) 세상 멸망 엔딩.

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단조로운 메카니즘은 무엇이란 말인가.
몰입할 수 있는 스토리도 없고, 카드 공개 단계에서 똑같은 지역이라도 연달아 나오게 되면 이건 답도 없다.
이것은 정녕 협력 게임의 최고봉이라고 할 수 있는가...
그냥 깨는 게 어렵기만 하면 최고의 게임인 것인가?

각자 서로 원하는  정령이 되어서도 꾸역꾸역 깰 수 있는 게 아닌, 최적의 조합을 찾아나가야만 깰 수 있는 것인가?
아니 힐러끼리 파티를 맺어도 레이드는 깰 수 있게 만들어줘야할 거 아니오?
탱커끼리 파티를 맺어도 레이드는 깰 수 있게 만들어줘야할 거 아닙니까?
탱커, 딜러, 힐러, 버퍼 구성하는 게 얼마나 현실적으로 힘든 일인 줄 알아여?
내가 온라인 게임을 접어버린 게 그 파티원 구하는 시간이 더럽게 길어서 그 시간이 아까워서 접은 건데, 이 정령섬을 깨기 위해 최적의 조합을 찾으려고 몇 십 시간을 계속 삽질해야 하냔 말입니다!!

크툴루를 좋아하지 않지만, 엘드리치 호러를 그리워하는 몸이 되어버렸다.
근데 생각해보면 엘드리치 호러도 각자 조합 생각 안 하고 원하는 캐릭터만 하면 게임 터지는 건 마찬가지네... 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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