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칼럼/나쓰메모] 그 여름날의 기억을 되살려 보세요.

 ' 나쓰메모 (なつめも;한국어판 정식 제목 미정)'의 공식 한국어판 발매 소식이 발표되었습니다. 이로써 중국어판에 이어 두 번째 해외 로컬라이즈 판본 이 되겠군요.  올해 초, 나쓰메모의 도쿄 게임마켓 2019 봄의 참여...


 '나쓰메모(なつめも;한국어판 정식 제목 미정)'의 공식 한국어판 발매 소식이 발표되었습니다. 이로써 중국어판에 이어 두 번째 해외 로컬라이즈 판본이 되겠군요.


 올해 초, 나쓰메모의 도쿄 게임마켓 2019 봄의 참여 소식을 접하게 되었을 때, 어떻게든 사올 게임 2순위로 점찍었던 기억이 납니다(1순위는 '방금 떠올린 프로포즈의 말을 너에게 바칠게.'라는 작품으로, 사실 도쿄 게임마켓에서 원화로 160만원어치에 가까운 보드게임을 구매해왔기 때문에 어떻게든 사올 게임이라는 타이틀이 다소 희석된 느낌이 있습니다만).

 사실 나쓰메모의 판매 부스를 정확하게 알지 못하였기 때문에 사오지 못할 뻔 했습니다. 거의 폐장 시간이 되어서야 '마지막으로 한 바퀴 돌아보자'고 한 뒤 기업 부스를 돌던 중, 마지막의 마지막에(진짜 우연찮게 이날 환전했던 엔화를 거의 모두 소진한 상태로 현금 약 4천엔 정도만 남아있는 상황에서 무조건 이건 나쓰메모를 구매하는데 써야겠다고) 겨우 발견하여 구매할 수 있었습니다(이런 식으로 구매하였던 게, 블레이드 론도 시리즈이지만, 나쓰메모를 구매하여 현금이 완전히 바닥나는 바람에 블레이드 론도 시리즈는 카드 결제).

 그리고 결과론적으로는, 이렇게 폐장 마지막 순간에 그리고 가지고 있던 최후의 현금까지 털어서 산 보람이 있는 매우 잘한 선택이었습니다.

그냥 또 앤 라이트가 아니야!



 롤 앤 라이트가 한창 유행하던 때이기도 하고, 힙스터 기질이 있는 저는 기본적으로 유행하는 장르인 롤 앤 라이트를 자연스럽게 멀리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나쓰메모가 롤 앤 라이트 장르라는 것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쓰메모를 꼭 구매하기로 합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여름방학을 주제로 하였다는 점, 일러스트에서 서정적인 감성이 물씬 풍긴다는 점, 바로 그 두 포인트면 구매의 이유로 충분했습니다. '도대체 여름방학을 주제로, 그리고 이런 서정적인 일러스트로 어떻게 롤 앤 라이트를 구현하였을까' 궁금했던 것입니다.

 나쓰메모는 단순히 주사위를 굴려서 종이에 적는 게임이 아닙니다.
 주어진 한달의 시간을 각 주차로 나누어 가장 알찬 여름방학을 계획한 사람이 승리하는데, 게임에 쓰인 방식은 드로우 앤 라이트입니다.

 각 주차별 더미에서 플레이어끼리 돌아가며 카드를 1장씩 뽑아 공개한 뒤 그 내용을 토대로 '나 언제부터 언제까지 곤충채집하러 갈 건데 같이 갈 사람? 손!'하고 발표를 하고, 그 발표 내용을 듣고 함께 할 사람은 거수, 그렇지 않을 사람은 가만히 있는 투표 방식도 접목되어 있습니다.

 일종의 역할 놀이로써, 성별이나 이름은 반드시 실제와 통일시킬 필요가 없습니다. 중요한 건 이 게임을 함께 하는 모든 플레이어가 서로 동년배의, 같은 동네의 친구라는 사실입니다.

나쓰메모의 대단함은 그 섬세한 디테일함에 있다!


 친구와 함께 하는 것을 콘셉트로 잡은 이벤트는 그 이벤트를 함께 진행한 친구끼리 하트를 주고 받습니다. 친구와 함께 할 수 없는 가족여행이나 시골 방문은 남과 함께 할 수 있는 이벤트가 아니기 때문에 하트도 주고 받지 않습니다.


 당연하겠지만, 여름방학에 밀린 숙제를 한다거나 밀린 일기를 몰아썼던 기억이 있을 겁니다. 나쓰메모는 이러한 현실감을 게임으로 잘 승화시켰습니다.

 놀다보면 점수도 팍팍 쌓이고 친구들과의 우애도 깊어집니다. 하지만 한 주 한 주 지날 때마다 숙제에 대한 압박으로 쪼들리게 됩니다. 왜? 지정된 페이지만큼의 숙제를 하지 않으면, 못 다한 페이지 하나당 마이너스 10점이라는 어마어마한 불이익이 기다리고 있거든요.

 나쓰메모는 어디까지나 훌륭한 여름방학 계획을 짜서 최고의 점수를 노려야 하는 게임입니다. 시간과 캘린더 칸은 한정되어 있고 숙제를 할 시간은 점점 줄어듭니다. 숙제 페이지 하나당 마이너스 10점이 얼마나 중요한 지는 직접 해보지 않으셔도 충분히 느껴지시겠지요?

 그리고 숙제 하는 날에 참고하는 카드에서의 깨알 같은 오답이 웃음을 자아냅니다.
 어릴 적 마이너스라는 개념을 아직 학교에서 배우기 전, 태권도 학원에서 '3-5=?' 등의 마이너스 개념 문제가 나왔을 때, 모두 정답을 '0'으로 적었다가 다 틀린 기억이 저절로 되살아 나더군요.


 각 주차에 입혀진 색깔도 매우 디테일합니다.
 1주차는 초록, 2주차는 노랑, 3주차는 주황, 4주차는 빨강.

 눈치 채셨나요?
 안정적인 색깔인 초록에서 시작하여 점점 급박함을 상징하는 빨강으로 변해가는 과정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간단하게 신호등을 떠올리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디자인에서 이러한 색깔까지 허투루 쓰이지 않음을 보입니다.

 그리고 성인이 된 지금, 우리는 이성과 어울리는 것에 환장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우리가 아직 어리던 시절을 떠올려 보세요. 우리는 이성과 어울리는 것보다 남자는 남자끼리 여자는 여자끼리 어울려서 노는 것을 좋아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나쓰메모에 등장하는 이벤트 역시, 남자 역할의 플레이어들끼리, 혹은 여자 역할의 플레이어들끼리, 또는 남자와 여자의 비율이 같거나 남녀가 섞여서 활동해야만 높은 점수를(그 반대의 경우도) 얻을 수 있게 차별적으로 설계가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차별적으로 점수가 설계된 이벤트의 면면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면 놀랍게도 전부 납득이 됩니다. '이런 건 남자아이와 여자아이가 함께 놀아야 재밌지'라고 생각할 수 있는 이벤트는 실제로 남자와 여자가 섞여야 높은 점수를 받고, '이런 건 단 둘이서 해야지', 혹은 '이런 건 짝이 맞아야지' 싶은 건, 정말로 그렇게 이벤트에 참여해야만 높은 점수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공부 모임에 참여를 할 때도, 여럿이서 공부 모임을 갖는 경우에는 친구와 떠드느라 공부에 집중하지 못하고 숙제를 얼마 못하는데, 혼자서 공부 모임을 진행하는 경우 딴짓 하지 않고 숙제에만 몰두하여 여럿이서 공부 모임을 가질 때보다 더 많은 숙제를 할 수 있는 등의 디테일도 숨어 있습니다.

 그 외에도 주사위를 이용한 소소한 미니게임이라던가 하는 섬세한 디테일들이 많이 숨겨져 있는 작품으로 이러한 디테일을 찾아내는 재미가 있습니다.

바로 지금 이 시대에 즐겨야만 하는 게임


 저는 아직 동네가 덜 개발되었던 시절, 즉 갓 아파트가 들어서고 아직은 논밭에 벼가 무르익고 잠자리가 날아다니며 비오는 날이면 개구리가 울던 시절을 겪었습니다. 또한 방학이 되면 시골로 내려가서 생활했기 때문에 도시에서는 겪을 수 없는 다양한 자연 친화적인 기억을 가지고 있지요.

 하지만 지금 논이었고 부레옥잠이 떠다니던 개천은 모두 아파트가 들어서거나 상가가 들어서거나 넓은 도로가 깔려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방학 기간에 잠자리채와 밀집모자, 잠자리통을 들고 다니며 어울려 노는 아이들을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밤이 되거나 비가 오더라도 더 이상 개구리가 울지 않으며 이따금 쌩쌩 화물차 지나가는 소리가 희미하게 창밖에서 들려올 뿐입니다. 수족관에 송사리와 물방개, 올챙이 등을 잡아다 넣었던, 그 시절엔 흔했던 일도 지금은 할 수 없는 일들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아이들이 온전히 이러한 감성을 우리와 공유할 수는 없겠지만, 세대를 뛰어넘어 이해와 공감을 체험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 것입니다. 우리 세대가 아직 현역인 이상, 최소 우리끼리라도 잊고 살았던 동심을 추억하며 과거의 소중한 것들을 되돌아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하루가 다르게 도시화하는 요즘, 디지털에 실증을 느끼고 아날로그 감성의 보드게임에 눈을 돌리게 된 것처럼, 과거를 추억할 수 있는 이 여름방학이라는 테마는 아날로그 감성의 보드게임과 너무나도 잘 어울릴 뿐더러, 캘린더의 빈 칸을 채우는 것으로 방학 계획을 짜는 것 역시 나쓰메모의 시스템인 롤(드로우) 앤 라이트와 너무 잘 어울립니다.

 어릴 적에는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 하지만 지금은 당연하지 않은 것들.
 떠날 것 같지 않았던, 항상 곁에 있는 건 아니지만 언제라도 다시 볼 수만 있었던 것 같았던 사람들이 이제는 사진으로밖에 추억할 수 없는.

 나쓰메모는 우리가 경험했던 여름방학을 게임으로써 웃고 떠들며 그 날의 여름을 다시 리마인드시키는 과정을 통해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 그리고 잊어버린 것들, 그렇기에 소중한 것들을 다시 한 번 떠올리게 함으로써 비로서 '살아있음'을, 현재의 소중함을, 서로 기억을 공유하고 공감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일깨워 줍니다.

 우리의 기억이 조금이라도 더 선명하게 남아있을 때 즐겨야 나쓰메모가 가져다 주는 감동 또한 더욱 커진다는 것을 잊지 마세요.

유사한 문화를 가진 국가끼리 공감할 수 있는 초월적 가치의 보드게임


 금방 가라앉을 것만 같았던 한일 관계지만, 마치 강대 강으로 붙은 것처럼 기약 없는 대립 관계가 지속되는 요즘입니다. 국가주의적으로 충돌하는 모양새이지만, 이는 옳고 그름을 초월한 가치 판단의 개념으로, 함부로 말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한편으로는, 개개인의 자유가 보장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개인이 스스로 선택한 어떠한 형태의 신념도 존중받아 마땅한 것이겠죠.

 당연하게도, 이런 양국의 경색된 분위기 속에서도 평화와 화합을 바라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저는 물론, '나쓰메모'의 작가인 미야노 카야(宮野華也)씨 또한 경색된 작금의 상황을 안타까워 하며 하루 빨리 양국의 화해 분위기를 바라는 것에 공감하였습니다(굳이 밝히진 않겠습니다만, 현재의 분위기에 한국을 비난하고 조롱하는 일본의 보드게임 작가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저는 이 여름방학이라는 주제가 다른 어느 나라도 아닌 한국와 일본, 두 국가가 유독 다른 나라에 비해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요소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여기에는 우리가 겪어온 일본과 관련된 슬픈 역사적 사실에서 그 근거를 불러와야 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너그러히 용서하는 마음에서 언급하지 않기로 하면)

 한국과 일본은 서로 인접하여 거의 동일한 사계절과 시간대를 가지고 있으며, 교육 과정 또한 1달 가량의 차이가 있을 뿐 입시 제도를 포함, 매우 유사한 교육 제도를 사회에 적용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 두 가지 공통점만 가지고도 한국과 일본의 보드게임 유저들은, 나쓰메모를 통해 거의 같은 감정과 정서를 공유할 수 있습니다.

 좋은 게임은, 언어와 국가, 정치, 사회, 문화를 넘어서 모두에게 통용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습니다. 나쓰메모는 바로 이러한 차이들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가진 게임입니다.

 여름방학이라는 하나의 테마를 통해, 세대와 국가간 사정을 초월하여 하나의 감정과 정서를 공유할 수 있는 나쓰메모가 이 시국을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는 하나의 평화와 화합의 매개체가 될 것이라는 것을 믿어 의심하지 않습니다.

 동아시아 국가만의 애틋하고 아름다운 정서를, 그리고 세대 간의 격차를 넘어,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그 어떤 모임에서도 다음과 같은 외침이 끊이지 않기를 바라봅니다.


 "이번 주 수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이틀! 나랑 해수욕장 갈 사람!?"

좋아할 만한 글

0 개의 댓글